회고를 한 번씩 써볼까 한다.
겪었던 일을 정리해가며 글을 쓰는 행위로 인해
내 인생을 제대로 되돌아볼 수도 있고, 앞으로의 길 또한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 대한 첫 회고로 졸업생으로서 현실과 세상에 부딪쳐가며 느끼는 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게임 개발자의 길
제목에도 쓰여있다시피, 나는 게임 개발자 지망생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컴퓨터 공학부에 입학한 이후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모든 실습 수업의 텀 프로젝트 때마다 주제를 게임으로 정하며 가르침 받지도 않은 것들을 혼자 도전했고,
마지막 프로젝트인 캡스톤 디자인 때는 출시를 위해 8개월 동안 매일 약 10시간씩 개발을 진행하면서도 행복함을 느꼈다.
그리고 취업 전선에 들어서며 유니티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열정적이고 진심이었지만, 지금은 포기라는 갈림길 앞에 서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졸업, 그 이후
졸업은 이번 연도 2월에 했고, 이후 5월 까지는 출시 예정인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출시 이후 5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했지만,
9월인 현재 구직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취준의 갈림길에 서있다.
지원 14곳 중 서류 탈락 6곳, 과제/테스트 탈락 3곳, 면접 탈락 4곳, 합격 1곳(입사 취소)
한 곳 한 곳 떨어질 때마다 멘탈과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6번쯤 떨어졌을 때, 그다지 좋지 않은 조건의 회사에 합격하였고,
자존감이 바닥을 찍은 상태여서 체념하고 입사를 확정했다가
한 친구의 만류에 결국 입사 취소 연락을 드렸다.
친구들의 격려에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다.
구직할 때 20번 이상은 기본으로 지원한다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꽤나 많은 위로가 됐다.
꿈에 그리던 곳
다시 도전하는 와중에 하나의 채용 공고를 보았다.
바로 인디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나는 추후에 인디 게임 개발 팀(또는 회사)을 설립하고자 하는 목표가 강했으나,
취직은 애초에 일반적인 기업에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체념했던 터라 너무나 놀랐고 기뻤다.
지원을 하여 면접까지 보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내 가치관과 잘 맞는 회사라고 느꼈다.
좋은 분위기 속에 면접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합격 연락이었다.
너무 입사하고 싶은 회사였어서 그만큼 절망감도 컸다.
그래도 내 꿈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물의 연속
내가 처음 우물을 느꼈던 적은 작년 초, 코딩 테스트의 'ㅋ'자도 모르면서
코딩에 대한 자신감만 가지고 카카오 인턴십에 도전했던 때였다.
2번째 문제에서 구현이 비효율적으로 길어졌고, 200줄이 넘어가며 집중력이 흐려졌다.
이제 와서 보면 딱히 특별한 알고리즘이 필요하지 않은 문제였는데도
그때는 한 문제만 푼 채로 시험이 끝났다.
대학 생활을 상위권으로 지내며 으스대던 나는 그렇게 세상을 처음 마주했다.
이렇게 내가 '우물 안 개구리' 였음을 깨닫고 수긍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구직을 하며 몇 차례 우물을 느꼈고, 그때마다 굉장히 절망스러웠다.
우물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는 지금도 우물 안이 아닐까 두렵다.
직격탄
다시 시작한 도전은 순탄한 듯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잦은 서류 탈락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던 포트폴리오를 보강하기로 했다.
약 3주간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진행해 보며 확고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확고하게 해두었고,
이와 더불어 확실히 이점이 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외면과 내면을 재정비하고 다시 지원하기 시작했다. 3차전이었다.
지원했던 3곳 중 한 곳에서만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프로그래머로서의 내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고, 꿋꿋했던 게임 개발자로 향하는 길 또한 헤집어 놓았다.
꼭 죄지은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갔고, '왜 이렇게까지 할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를 주눅 들게 하였다.
이력서에서 기대했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심지어 시간 낭비 했다는 듯이 행동했다.
이내 너무 나무라는 분위기를 알아챈 면접관은 머쓱해하며 포장을 했지만, 나에겐 확인 사살일 뿐이었다.
'잘 걸렀네' 수준으로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실력, 가치관, 방향성 등 모든 부분에서 부정당하는 바람에 자존감이 땅속으로 처박혀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우물 안에 있었음을 느꼈다.
가치관 싸움
프로그래밍이 좋아서라기보다 게임 개발이 좋아서 이 길을 계속 걸어왔다.
게임 개발이 좋은데 프로그래밍까지 적성이 잘 맞으니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게임 개발이 최우선시되었던 나의 프로그래밍 생활은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았다.
취업 전선에 들어서면서 내가 줄 서야 했던 곳은 게임 프로그래머였는데,
게임 개발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한다는 같잖은 인디 개발 마인드는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었고,
기업들은 하나같이 나를 프로그래머로서의 마인드와 자질로 평가했다.
게임 프로그래머도 결국 프로그래머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마냥 머리가 얼얼했다.
아직 프로그래머의 마인드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그래밍을 포기할 정도로 싫거나 적성에 안 맞는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프로그래머로서 성장해야 함을 많이 느낀다.
갈림길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지금 나는 갈림길에 서있다.
원래는 9월 말까지 구직 활동을 계속해 보고 안되면 본격적으로 취준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2주가 남은 시점인 지금의 나는 마저 할 의지도, 의욕도 거의 없다.
내가 취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사실인지, 처박힌 자존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머리를 비우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게임 개발자로서 계속 나아가야 할지도 조만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게임 개발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꽤 크게 다가왔고,
가득 차 있던 낭만은 현실을 만나 나로 하여금 수지 타산을 하게 했다.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하자'라는 직업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살았던 예전의 나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현실에 지쳐버린 지금의 나는 갈림길에 서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모를 선택을 해야 한다.
마치며
요즘 들어 자주 들었던 생각이 있는데, '한 달 뒤의 나는 얼마나 단단해져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그 생각을 하고 약 2달 후인 지금, 나는 너무나 너덜너덜해져있다. 하하..
그래도 곤충이 탈피하는 것처럼, 더 단단해지기 전에 잠깐 무른 것이라고 생각하고있다.
구직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깨달음과 성장이 있었다.
목표를 향해 조금 돌아가는 느낌은 있지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비어있던 곳을 꼼꼼히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심지어 위로와 공감에 대한 나의 인식 변화도 있었다. (나에겐 굉장히 놀라운 점)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느꼈던 이 경험은 나에게 굉장한 정보이자 원동력이 될 것이다.
때로는 햇살을 받으며 배웠고, 때로는 태풍을 맞으며 배웠다.
그리고 이는 내가 앞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비료가 될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결국 더 나은 개발자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4개월 동안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결국 버텨냈다.
그리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